몽당 한항길선생 육성 듣기 (1970년 후반 행사 중에서)
부천대학교의 설립자 몽당(夢堂) 한항길(韓恒吉) 선생(1897~1979)은 1897년 8월 15일 인천에서 태어나 ‘한민족의 복을 일으켜 세우라’는 뜻으로 조부가 ‘흥리(興履)’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유년기부터 한학에 조예가 깊은 조부 밑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유교적 가치관과 정의감을 몸에 익히며 성장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열린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뒤 시흥역과 안양역, 군포역 등지에서 시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었으며, 3월 5일 경성역(서울역)앞 학생만세 때 만세행렬 중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 뒤 연초영업소에서 근무하던 그는 광복을 맞은 1945년 경기 안양시에 안양직물주식회사를 차려 기업운영에 나섰다. 평생 양복 한벌로 살 만큼 근검절약을 실천했던 선생은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심으로 1948년 정부가 주는 효자상을 받기도 했다. 3.1운동에 참여한 공훈으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으며 2008년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됐다.
1999년 부천시는 그를 부천을 빛낸인물로 선정, 2002년 시청 앞 중앙공원에 전신상을 건립했다.
감옥에서 풀려난 선생은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판단아래 교육자의 길을 선택하고 1928년까지 교편을 잡았다. 이후 선생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되자 이를 기념하여 본명을 ‘흥리(興履)’에서 한국의 항상 길함의 의미로 ‘항길(恒吉)’로 개명하며 민족적 염원과 국가의 발전에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 해 선생은 국가 경제가 자립해야만 나라의 진정한 독립이 가능하다는 판단아래 공업인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고 경기도 안양시에 안양직물주식회사를 차려 기업운영을 시작했다. 6.25전쟁이 끝나고 난 후 나라의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산업체와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아래 1958년 소사공업기술학교(현 부천대학교의 전신)를 설립하였다.
몽당(夢堂) 한항길 선생은 많은 업적을 뒤로 한 채 부천공업전문대학이 개교한지 2개월 후인 1979년 5월 8일 향년 83세로 영면에 들었다. 이후 1990년, 3.1운동에 참여한 공훈으로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어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됐다. 1995년 8·15 기념일에는 안양시청이 자유공원에 선생의 동상을 건립해 유업을 기렸으며, 1999년 10월 1일에는 부천시를 빛낸 사람으로 선정되어 부천시민의 날을 기념해 영정 제막식이 열리고 2002년 6월 10일에는 부천 중앙공원에 선생의 추모공원이 건립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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